역사/전쟁사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민족 최초의 해외 원정전투, 발해 vs 당나라 ------------------------------------------732년 발해 무왕이 장문휴(張文休)가 이끈 수군을 보내어 당나라의 등주(登州)를 공격하여 자사 위준(韋俊)을 죽임(등주 공격) *출전 : , 발해말갈 733년 당나라의 요청으로 발해 공격을 위해 김사란(金思蘭)이 이끈 신라군이 출동하였으나 눈이 많이 와서 철수함. *출전 : , 성덕왕 32년 7월 733년 발해 무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당나라 마도산(馬都山) 일대를 공격함(마도산 전투) *출전 : ---------------------------------------------------- 발해가 대조영에 의해 건국되면서 당나라는 발해를 국가로 인정해 주다가719년 대조영이 죽고 무왕(대무예)이 2대왕에 오르면서부터 당나라가 .. 더보기 조선 vs 러시아, 나선정벌 1654년 7월 2일 변급(邊岌)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흑룡강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귀국. (제1차 나선정벌(羅禪征伐)) *출전 : 1658년 6월 10일 경상북도 병마우후 신유가 지휘하는 조선군이 청군과 흑룡강 어귀에서 러시아군 격파. (제2차 나선정벌) *출전 : 박태근, 〈조선군의 흑룡강출병〉, 9, 국사편찬위원회, 1981, 250쪽 제 1차 정벌에 관한 내용은 그닥 없음 그래도 조선이 나선정벌을 하게된 내용을 알기 쉽게 얘기해 보자면 일단 원래 나선정벌은 청나라와 러시아간의 싸움이었음 15세기 러시아는 몽골한테서 독립하고16세기 말부터 세력확장을 위해 여기저기 진출하고 있었음. 17세기 중반, 60년만에 러시아는 중국 접경까지 세력을 넓혔고 거기서 많이나는 자원인 모피나 광물을 얻기위해포풍 약ㅋ.. 더보기 임진왜란 3대 대첩 - 진주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고 불리는 혈투. (나머지 둘은 한산도 대첩, 행주 대첩) 1952년 음력 10월 4일 ~ 10일. 조선군 - 수장 : 김시민 진주성 수비군 + 의병 연합군 3800명 vs 일본군 - 수장 : 우키타 히데이에 진주성 공격군 30000명 [전투 배경] 우선 1592년 6월 이후, 이순신 장군의 해로 차단과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약으로 조선군은 철저한 수비전에 돌입. 일본군은 이에 북진의 기세가 꺾이고 경상도를 털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 그러다가 결국 육로로 서진하여 전라도 쪽으로 진입하려 했지만 에 가로막혀 진격을 멈출 수 밖에 없었지. 당시 일본군은 진주성에 경상도에서 퇴각한 병력 대부분이 모여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공격하기로 결정하지. 그러나 진주성을 둘러싼 남강을 건너 .. 더보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변천사. 1954년. 원래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장소는 저기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음. 지금은 북괴군이 평화박물관이라 이름붙이고 북괴로 오는 관광객들 브리핑 하는 장소임.공동경비구역은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 이 때만해도 휴전상태가 반세기를 넘을 것이라 생각 못했겠지... 968년. 아직 부대 명칭이 USASG(미육군 지원단) 시절. 1952년에 정전협정 지원을 위해 편성된 부대가 그 시초임. Joint Security Force는 경비중대 명칭인데, 80년대까지 한미 연합 편성이라 그렇게 이름 지어지듯. 찦차에 헌병 병과 마크 있는데 나중에 보병부대로 바뀐다.부대명칭은 UNCSG(유엔사지원단)으로 바뀌었다가 또 70년대 후반에 유엔사경비대(UNCSF)로 바뀌었다가 90년.. 더보기 (2차 세계대전) 일본 본토 공격작전, 작전명 '몰락' 더보기 대한민국 수색 군견. < 헌트 소위 > 198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서 동북쪽 26km 지점에서 북괴가 뚫어놓은 4번째 땅굴이 발견된다. 당시 강원도 쪽에는 땅굴이 없을 거라는 예상을 뛰어넘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민국 국군은 역갱도 작업으로 땅굴의 탐색을 시작, 이듬해 1990년 3월 3일. 작업이 완료되면서 땅굴 수색 및 북괴군 소탕 작전이 시작되었다. 제 1땅굴 발견 당시, 국군은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제 2땅굴 수색 작전에서는 김호영 중사 외 7명이 북괴가 설치한 부비트랩에 의해 순직했을 정도로 땅굴 수색 작업은 대단히 위험한 작전이다. 이에 국군은 수색 분대에 군견 한 마리를 딸려 보낸다. 제 4 땅굴 투입 직전의 수색대원들 모습 군견의 이름은 헌트. 독일산 셰퍼드 종으로.. 더보기 [명량대첩] 400여년전 한일전을 실황으로 관전한 민초들 400여년전 명량에서 이순신의 조선함대는 일본의 연합함대를 격파한다. 그것도 수많은 민초들이 관전하는 상황에서.. --------------------------------------------------------------------------------- -서울-1.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직전 서울의 대신들은 식솔들을 황해도쪽으로 미리 피난시킨다2. 선조임금 역시 후궁들과 중전을 황해도로 피난시키고 자신도 도망칠 궁리를 하다 대신들의 항의를 받는다.3. 선조임금은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들도 식구들 피난 시키면서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 -진도와 해남현 명량-1. 이순신은 일본의 대규모 연합함대를 명량으로 유인하기 위해 명량해협 밖에 있는 벽파진에 16일간 정박한다2. 이 기간동안 일본함대의 선.. 더보기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