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4년 7월 2일
변급(邊岌)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흑룡강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귀국. (제1차 나선정벌(羅禪征伐))
*출전 : <<조선왕조실록>>
1658년 6월 10일
경상북도 병마우후 신유가 지휘하는 조선군이 청군과 흑룡강 어귀에서 러시아군 격파. (제2차 나선정벌)
*출전 : 박태근, 〈조선군의 흑룡강출병〉, <<한국사론>>9, 국사편찬위원회, 1981, 250쪽
제 1차 정벌에 관한 내용은 그닥 없음 그래도 조선이 나선정벌을 하게된 내용을 알기 쉽게 얘기해 보자면
일단 원래 나선정벌은 청나라와 러시아간의 싸움이었음 15세기 러시아는 몽골한테서 독립하고
16세기 말부터 세력확장을 위해 여기저기 진출하고 있었음.
17세기 중반, 60년만에 러시아는 중국 접경까지 세력을 넓혔고 거기서 많이나는 자원인 모피나 광물을 얻기위해
포풍 약ㅋ탈ㅋ
청나라가 깝치지 말라고 러시아에 경고함
러시아曰 "좆ㅋ까ㅋ"
열받아서 정벌하러 군사 끌고 감.
근데 말처럼 안되고 청나라가 싸우는 족족 좆털림 ㅋㅋㅋ
단 한번도 못이겨서 원인이 뭘까.. 고민해 봤더니 청나라 군사 멘탈,무기 문제라는걸 깨닫고
조선에 지원요청함
당시에는 북벌론의 효종이 집권할 때였고 임진왜란 이후에 조총을 사용하고
또한 북벌론에 기반하여 군사력을 증강시키는데 열중했기 때문에
조선군은 마치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과 같이 용맹했음.
북벌론을 주장한 학자들도 많았지만 북학론이라 해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100전 100승이다."라는 이론으로 파병을 주장한 신하들과
병자호란때 강제로 맺어진 "정축화약"이라는 조약에서 좆같은 조항인
"청나라가 지원요청하면 닥치고 지원해야함"이라는 내용때문에
어쩔수 없이 파병해줌
그렇게 해서 제 1차 정변때 변급 장군이 정예병사 100명
[조총수 100명에 초관50명(초관은 오늘날의 초급장교 소위에 해당하는 계급으로 100명의 졸병을 거느리는데 나선정벌에 뽑힌 초관들은 훈련 잘된 장교들인듯?)]
을 데리고 청나라가 쩔쩔맨 러시아 군을 7일만에 격퇴하고 쿨하게 귀환함.
이후 청나라는 계속 러시아 정ㅋ벅ㅋ 하려고 위로 치고 올라가는데
조선군이 참가했던 전투 외에는 또다시 한번도 못이김 ㅠㅠ
그렇게 4년동안 진전이 없어서 청나라는 다시 조선에 지원요청함.
이번에도 효종은 북학론을 주장한 신하들을 참고하여
"콜~" 했지만 실질적으로 징집해서 파병가야하는 "신유"라는 장수는 상황이 안좋아 못간다고 했음
(당시 함경북도 병마우호로 있었는데 청나라 사신이 갑자기 찾아와서 지금 당장 파병해달라고 했음.)
하지만 다시한번 조약 운운하며 파병하라고 협박해서
고민하던 신유는 지원자를 뽑아서
이번에는 조총수 200명에 초관 65명으로 정벌하러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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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이 과정에서 효종임금이 추진하던 북벌론이 빛을 발하게됨 ㅋㅋ
효종은 직위 10년동안 자나깨나 북벌론을 추진해 왔는데
그 세부 계획중 하나가
지방에서 재능있는 병사,장수는 한양으로 불러오거나 전방에 배치하고
반대로 한양에서 날리는 병사나 장수는 다시 지방으로 보내서 계속 순환하도록 만든 시스템이 있었는데
이게 군사력 증강에 매우 효율적이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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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북벌론의 한 시스템 덕분에 선별된 지원병사 200명과 초관65명이 한마디로 소수정예부대가 됨.
이렇게 부대를 편성해서 연해주로 ㄱㄱ함
7일동안 개고생 해서 청나라 주둔지에 도착했는데
ㅅㅂ 청나라 부대 대장인 사이호달이라는 개객끼가 병자호란때 조선에 쳐들어왔던 놈이라
조선군이 왔는데도 존나 문전박대 함.
(성에 도착했는데 들여보내주지도 않고 옆에 주둔시킴)
그렇게 한것도 모자라서
조선에서 사단장 급(사단장 이상 군단장 이하) 신유장군을 일계 부대 행보관 급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조선군을 청나라 부대에 예속시켜버림..
하지만 명색이 조선군 장수인데 병사들이 무시할리가 있나..
훈련이나 전투에서는 조선군이 자발적으로 신유장군 말에 따랐음
(신유장군의 일기"북정록"에 보면 그당시 조선군이 이따위로 대우받는게 존나 서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표기함)
하지만 조선군의 패기는 훈련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함.
60보 거리에서 폭 10센티 기둥을 사격하는 훈련에서
200명의 조선 조총수는 123명이 명중을 시켰고
청나라 조총수 100명중에는 한자리수 인원만 명중시킴 ㅋㅋ
그렇게 한달쯤이 지나고 드디어 신유장군은 러시아군과 마주하게됨.
그당시 신유장군과 맞붙은 러시아군은 코자크족이라는 부족인데
얘들은 간단히 말해서 러시아의 스파르타임
무장상인인데 3살때부터 말타고 존나 잔인함 ㅋㅋ
청나라 군대를 개털어버린 애덜도 얘들이고 러시아가 남쪽으로 세력확장을 할수 있던것도 코자크족 덕분임..
근데 조선군 앞에서는 그런거 다 필요 없음ㅋㅋ
러시아군과 조청 연합군이 처음 만나서 전투를 한건 해전이었는데
처음에는 서로 멀리서 포만 쏨..
근데 청군이나 러시아군이나 명중률 시망이라
근접전을 하게됨
이때 조선 조총수가 전진배치되고 러시아군 함선에 있는 코자크 부족애들 조총으로 올킬함ㅋㅋ
코자크 애덜은 버티다 못해 배 안으로 숨어버림
그것도 모자라 조선군은 갈고리를 이용해 배를 끌어당겨 상대편 배로 넘어가서
불태우기 신공 발휘
(생포고 뭐고 필요없고 모두 올킬 할 생각으로 신유장군이 지시내림)
그리고 도망가는 적선도 쫓아가서 백병전해서 올킬해버림
(40킬 0데스)
전투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사이호달 개객끼가
"적선 불태우지 마셈 나 적선에 있는 모피 탐남" 이ㅈㄹ해서
적선에 불지르던 조총수 8명이 하던거 멈추고 자기 배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배안에 숨어있던 코자크족 애덜이 뒤치기함..
그래서 그자리에서 7명이 죽고 1명은 중상 입었다가 그날밤 사망..
전투가 다 끝났다 싶어서 청나라 군사는 적선에서 모피 빼오고
조선군은 대기타고 있는데
배 안에 숨어있는 코자크 족이 계속 같은방법으로 뒤치기를 해대서 신유장군이 걍 불질러버림;
결국 올킬.
전투결과 조선군은 265명중 8명만 안타깝게 전사하고
러시아군은 지휘관인 "스테파노프"를 포함해 270명 사망
이후 코자크족은 "대두인"을 무서워 했다고 함.
(여기서 대두인은 검은 모자를 쓴 조선군을 의미함/조선군의 나선정벌 당시 복장)
이렇게 승전보를 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청나라는 러시아의 반격이 무서워서 전투가 끝난 후에도
신유장군의 부대를 3개월이나 연해주 흑룡강 부근에 강제 주둔 시킴;;;
청나라에게 좋은 대접은 못받았지만 이 나진정벌로 인해
러시아군의 신식 조총을 연구할수 있게되었고
(300개에서 400개를 뺐었는데 사이호달 개객끼때문에 신유장군은 겨우 1개만 챙겨서 조선에 들고옴..)
더 나아가 이후 조선이 200년동안 평화로울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신유장군 초상화를 찾아보려 했는데 찾을수가 없다..
이후에도 신유장군은 나름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함.
56대 삼도수군 통제사도 역임하고..
(초대가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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