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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사

포위 섬멸전의 교과서, 칸나에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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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에전투란?


칸나에 전투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인 기원전 216년에 이탈리아 중부 아프리아 지방의 칸나에 평원에서 로마 공화정 군과 카르타고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야. 이 전투에서 한니발이 지휘하는 카르타고군은 완벽한 포위 작전으로 로마군을 전멸시켜 현대에도 포위섬멸전의 교본으로 남아 각국 사관학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어.

 

 

 

 

한니발이란누구인가?




한니발 바르카스 [Hannibal Barcas, BC 247~ BC183]

 


카르타고 의 출신으로 국외파의 리더인 바르카스 가문의 하밀카르 바르카스의 맏아들로 태어난다.

 

 

하밀카르 바르카스(한니발의아버지)


제1차포에니전쟁때 하밀카르는 시칠리아에 파견되어서 뛰어난 작전을 펼치며 로마군을 괴롭혀.

 

하지만 결국 1차포에니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나고 말어..(하밀카르는 그에따라 로마에 대한 깊은 원한이 생겨.)


하밀카르는 본토 아프리카를 떠나 카르타고의식민지인 에스파냐 지방에 신 카르타고 즉 카르타헤나를 새워.

 

한니발은 아버지에게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하자 하밀카르는 카르타고의 신전인 타니트신전에


한니발을 데리고가서 로마를 적으로 맹세시킨후에 데리고가.

 

아버지는 죽고 그의 사위인 하스드루발이 잠시 그 공백자리를 채우고있다가


암살당하자 한니발은 드디어 바르카스가문의 가장이 되고

 

카르타고정부도 그를 카르타고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한니발은 에스파냐지방을 평정하고 로마는 이에 따라 한니발과 협정을 맺어


이브로강 이남까지만 카르타고의 영토로 허락해준다는협정.

 

그러나 에스파냐의 로마의 동맹도시인 사군툼에 다다랐을때,


한니발은 사군툼을 공격하여 점령해. 분명 1차 포에니 전쟁의 조약인


카르타고는 로마 및 로마의 동맹 도시에 공격을 하지 않는다. 라는 조항에 위배 되는 것이야.

 

로마는 이에 카르타고에 선전포고를해

 

 

 

 

 


 

<2차포에니전투>

 

하지만 카르타고는 치밀한 계획을 준비해.

 

한니발은 보병9만과기병 1만2천 코끼리 36마리를앞세워(누미디아 기병, 리비아 장창부대, 갈리아족 전사)

 

 로마가 예상한 마르세유를 통해  로마로 오거나 평지로 돌아서 쳐들어오는두가지예상을 뒤엎어버리고   지중해를 건너

 

지금의 스페인,피레네산맥,프랑스를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쪽으로 침입해.





  

 

론강과 포강과 알프스를 거치면서 그의 병력은

 

보병 2만과 기병9천기와 코끼리 20여마리..


한니발은 비주력부대의 필요성을느끼고 로마군을찾아서떠나.





로마의 주요병력은 시칠리아섬과 이탈리아 남쪽에 배치되었고 이탈리아 북쪽은 거의 소수의 병력만이 남아 지키고 있어.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트레비아 전투, 트라시메노 전투에서 매복전술에 걸려 많은 피해를 입으며 연이은 패전의 굴욕을 당하게 돼.

 

이렇게 상황이 위급해지자 로마 원로원은 급히 군대를 다시 소집하고 새로운 집정관 2명을 임명하는데

 

새롭게 편성된 로마군단은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위치한 칸나에 평원에서 카르타고군을 만나 역사적인

 

 

'칸나에전투'를 치루게 된다!





 

 B.C 215년 8월 1일 아침

 

적막이 흐르는 칸나에 평원에서 카르타고군과 로마군이 서로를 마주보며 대치해.

 

한순간 전쟁터에는 고요가 엄습했고, 두나라 대군 사이에 있는 것은 여름바람에 날리는 먼지뿐이었어.

 

4만명의 카르타고군은 한니발이 지휘를 하였고

 

8만명의 로마군단은 루키우스 아밀리우스 파울루스와 가이우스 타렌티우스 가 지휘를 해.

 

로마군단은 매우 조직적인 대형을 갖추었고 사각형으로 밀집된 일렬로 늘어선 대형이였어.





<로마군 포진>

 

 

 

하지만카르타고군은 중앙이 앞으로 나오고 측면이 뒤로 배치된 초승달 모양의 대형이였어.

 

한니발은 정예부대인 리비아 장창부대를 선두가 아니라 후방인 양쪽 측면에 배치하고

 

가장 약체 부대인 갈리아족 전사를 중앙 선두에 배치해.

 

평범한 로마군의 대형과는 달리 매우 독특한 카르타고군의 대형은

 

그의 병사들 조차 한니발의 전술을 이해하지 못해.

 

더군다나 이런 독특한 대형으로 두배나 많은 로마군단을 상대한다는 것은 매우 무모해 보였어.

 

아마도 이 전술이 뛰어난 반전을 보여주는 작전이 아니라면

 

이들 스스로 자살을 택하는 아주 바보같은 대형은 분명해 .

 





<초승달형 카르타고 군대 포진>

 

 

 


카르타고군과 로마군단 모두 양쪽 측면에는 각각 기병을 배치해.

 

카르타고의 누미디아 기병은 만명이였고 로마의 기병은 6천명이였어.

 

카르타고 기병은 로마 기병보다 숫자도 많았으며 전투경험도 많아

 

기병의 전력으로는 카르타고군이 로마군보다 우세했지.

 

먼저 카르타고의 누미디아 기병이 로마의 기병을 향해 돌진하였고

 

로마군단의 주력인 보병부대는 카르타고군을 향해 천천히 진군을해.

 

로마군단을 지휘하는 2명의 집정관은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파울루스는 신중한 반면  바로는 저돌적으로 밀어 붙여.

 

로마군은 창과 방패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질서정연하게 카르타고군을 향해 점점 다가가.

 

한편,한니발은 가장 큰 접전이 예상되는 갈리아족 전사들을 계속 독려하고 있었지.

 

하지만 갈리아족은 두려움을 가지기보다는 그들이 선두에 서는 것이 전사의 자세라고 믿었기때문에 무서워 하지않았어.





 

양쪽 군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로마군의 보병대는 카르타고군을 향해 일제히 창을던져.

 

그러자 선두에 서 있던 갈리아족 전사 일부가 창에 맞아 쓰러져.

 

중앙의 병력을 우습게 보았던 로마군은 숫적으로 우세한 것을 믿고 검을뽑아 거세게 밀고 나가.

 

중무장한 로마군 앞에 갈리아족 전사들은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해.

 

갈리아족은 로마군의 진격을 허용하며 뒤로 물러설때마다

 

그들의 사상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어..

 

어드덧 카르타고의 초승달 대형은 점점 평평해지고 이대로는 카르타고군의 중앙이 무너져

 

로마군의 승리가 확실해 보였지. 

하지만 이 전술은 한니발의 계획된 함정이였어.

 

로마군이 정면대결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기 때문에

 

그들은 한니발의 함정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채

 

카르타고군의 중앙을 뚫기위해 계속 전진만 했어 .





마침내 한니발이 초승달 대형을 유지했던 이유가 드러나는데!

 

로마군이 중앙으로 너무 깊숙히 밀고 들어오자 로마군의 대형은 전보다 많이 흐트러졌어.

 

그러자 측면에는 기다렸다는 듯, 카르타고의 리비아 장창부대가

 

로마군의 양쪽 측면을 둘러쌓아 공격을 해.







그리고 후방에서는 로마기병과 압승을 거둔 누미디아 기병이 빠른속도로 로마군의 후방으로 접근을 해.

 

갑자기 로마군에게 싸움터가 네 군데나 생겨버리게 된거지.








로마군의 정면에는 갈리아족 전사가, 양쪽 측면에는 리비아 장창부대가,후방에는 누미디아 기병에게 포위된거야.

 

어느새 로마군은 방향 감감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많은 수의 아군끼리 서로 뒤엉키고 방해가 되엇지.

 

로마군은 검조차 제대로 휘둘를수 없었고 아무런 대응조차 할 수가 없었어.

 

한번 포위된 병력의 숫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야.

 

로마군의 대형은 전술을 구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너져 버리게 되자

 

 그들은 마치 축구장에 빠져나오는 군중처럼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 하였지.






시간이 흐를수록 카르타고군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져 들어왔고 로마군 앞은 사방에 먼지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 않았어.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로마군은 지쳐자고 패닉상태에 빠져 전의를 상실하게 돼.

 

 그들은 한니발의 덫에 걸려 완전히 포위당한채마지막 한명이 쓰러질때까지 전투는 계속되었지.

 

불과 4시간동안 짧은 전투였지만 카르타고군은 6천명이 전사한 반면,로마군단은 7만명이나 전사를하고말어.

 

로마 집정관인 바로는 살아남은 기병과 함께 도망치고 또 한명의 로마집정관인 파울루스는 창에 맞아 목숨을 잃게 돼.

 

칸나에 전투는 한니발의 대승리로 끝나게 되고 로마군은 로마제국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해.

 

이처럼 칸나에 전투는 고대 전쟁 중 하루 사상자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있어.






<칸나에 전투 의의>

 

수적으로 열등한 병력으로 상대를 포위하는 전술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야.

 

한니발 처럼 대담하지 못하였더라면 어느 누구도 이런 전술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지.

 

한니발은 이미 정탐꾼을 보내어 로마군단을 지휘하는 두명의 집정관이 서로 다른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어.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파울루스와 바로는 많은 병력만 믿고 있었고

 

그들은 서로 전공을 차지하기위해 진격만 하였을 뿐이었고 한니발의 전술을 읽는 것에는 현명하지 못했지.

 

이것은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지휘자의 지도력이 부족하다면 그 군대의 힘은 제대로 발휘할수 없다는 것을 말해.

 

 

 

반면에 한니발은 언어가 다른 여러 민족들을 데리고 승리한 이유가 있었어.

 

한니발이 병사들과 함께 20년동안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서 자며 똑같은 생활을 한 덕분에 신뢰를 얻은거야.

 

한니발은 병사들과 동거동락하며 알프스산맥을 넘고 나서부터는 사기가 치솟아 올랐고

 

매번 전투마다 승리하여 자신감에 차있었지.

 

그는 누구보다 카르타고 병사들을 독려할줄 알았고

 

갈리아족 전사들이 선두에 서는 것또한 한니발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지.

 

우리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전하듯이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를 공격한 나폴레옹과 

수세에 밀린 소련군이 독일군을 포위하여 역전 승리한 스탈린 그라드 전투는

 

모두 한니발의 영향을 받은 것이야. 





한니발의 병사들은 알프스 산맥은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하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길을 찾을 수 없다면 길을 만들어라"

 

한니발 바르카스 [Hannibal Barcas, BC 247~ BC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