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독일의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음악의 아버지' 이 한마디로 바흐를 논할 수 있음. (이 칭호는 아마 베토벤이 바흐를 두고 한 말인 '화성의 아버지'가 원조일듯)
클래식의 정점에 선 작곡가. 바로크 음악사조를 혼자 다 해먹은 사람(고전파로 분류하기도 함). 서양음악이 사라진다 해도 평균율 두 권만 있으면 문제없대.
그를 믿지 않는 작곡가는 없으며(클로드 드뷔시), 모든 음악의 시작과 끝(막스 레거)을 창조하고, 그의 작품들은 음악사상 가장 놀랄만한 기적(리하르트 바그너)으로 일컬어짐.
교양서적이든 전공서적이든 바흐를 얘기할 땐 한 페이지를 바흐 후장 탐닉하는데 씀. 온갖 미사여구와 찬사가 쏟아지는데... 다 그럴만하니까 하는거지.
이쯤 되면 잡스 수준이라고 태클거는 게이들이 분명히 있을거임.하지만 상관없음. 바흐니까. 바흐교는 애플교보다 만배 더함ㅋ 괴테도 아인슈타인도 바흐빠. 괴테는 시까지 써서 바침...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칭송하는 데는 이유가 있음. 그 이유가 뭘까?
정답은 나도 모름. 바흐의 음악들이 보편적인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가 지은 수많은 작품들이 후대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음.
참고로 내가 바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들으면 좋으니까. 진짜 쩔어.
1685년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남. 위인은 다 그러하듯이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아버지께 음악을 배움.
그러나 9살때 부모님을 잃고 어려운 처지에 맏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얘도 음악가로 유명)와 함께 살게 됨.
뭐 이게 행운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당시 뛰어난 음악가였던 요한 파헬벨(캐논을 작곡)의 제자였던 형과 함께 지냈던 것이 바흐에겐 큰 도움이 되었음.
형에게 파헬벨의 작곡 기법을 배우고, 다양한 악보를 몰래 베껴 공부하는 등 성실히 앞날을 준비.
근데 이때 공부 너무 열심히 해서 노년에 실명했다는 얘기가 있네. 바하찡...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활해야 했던 바흐는 3개월간 바이마르의 궁정악단에 바이올리니스트로 취직함. 딴따라였음.
이 짧은 기간에도 성실하게 음악에 전념하며 바이올린 연주법을 익혔고, 이는 훗날의 무반주 바이올린곡들의 작곡에 영향을 미쳤다고 함.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E장조 BWV 1006 - 1. 프렐류드>
사실 바흐의 주전공은 오르간임. 3개월동안 몸담았던 바이마르의 궁정악단을 떠나고 바흐가 정말 원했던 아른시타트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들어가게 됨 요시!
교회 오르가니스트라는게 그 당시에는 지위도 보수도 높았고, 가문사람들이 거의 다 갖고 있던 직업이었으므로 자존심 문제도 있었겠지. 바흐가 합격전화 받고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상상감.
이 아른시타트 시대엔 오르간곡들을 주로 작곡했음. 그 유명한 토카타와 푸가도 이때 작품. 20살 쯤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짐...쩐다...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65 - 1. 푸가>
이걸 어떻게 20살에 써 시발...
토카타란?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건반음악의 한 장르라고 생각하면 됨.
그럼 푸가란? 돌림노래 같은거. 같은 멜로디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형되어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음. 각 멜로디의 구성과 서로간의 화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골아픈 음악이기도 함.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바흐 인벤션&신포니아가 대표적인 예겠고, 굳이 건반음악 뿐만 아니라 음악계 전반에 걸쳐 쓰이는 작곡형식이야.
특히 바흐가 이 푸가 형식을 좋아했는데, 즉석에서 6성푸가(멜로디 6개가 교묘하게 연주됨)를 작곡하거나 매일 아침 운동 삼아 푸가 하나씩 쓰고 하루 시작했다는 얘기는 유명함.
자기주장이 강했던 바흐는 성직자들이 보기에 튀는 행동을 많이 했음. 낯선 멜로디를 집어넣는다던가 4개월동안 음악여행을 간다던가(이건 좀 심했지만 바흐의 커리어에 무한한 밑거름이 된 여행이었음)...
그래서 결국 4년만에 뛰쳐나가고 1708년에 뮐하우젠에서 1년동안 오르간침. 이때 바흐는 육촌 여동생과 결혼. 초기 칸타타도 씀. 22살에 이런거 씀.
<교회 칸타타 106번 BWV 106 - 합창 '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 > (2:39 부터)
아 거룩하도다.
칸타타란? 옛날엔 기악곡에 반대되는, 성악이 들어간 곡을 의미했고 요즘은 바흐의 영향으로 칸타타 하면 교회 칸타타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음.
신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악 반주와 함께 성악으로 노래한 곡, 쉽게 말해 찬송가라 보면 될 듯. 물론 세속 칸타타도 있지. 커피나 사냥 등 일상의 주제를 담은 칸타타임.
바흐는 칸타타의 왕이라 200여곡의 교회 칸타타 및 각종 세속 칸타타를 씀.
특히 깊은 신앙심을 정성껏 담아 지은 교회 칸타타는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깊은 감명을 줌. 근데 난 칸타타 별로 안좋아함ㅋ 잘 몰라서ㅋ
바흐는 다시 바이마르로 돌아가게 됨. 그러나 한낱 궁중악사였던 지난날과 달리 궁정 오르가니스트라는 거창한 직위를 get함. 영주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봉급도 훌쩍 오르고 명성도 드높아짐.
한창 오르간에 삘이 잔뜩 꽂혀서 오르간곡들을 잔뜩 씀. 이탈리아의 협주곡 양식도 열심히 공부함.
<소(小) 푸가 g단조 BWV 578>
와 쩐다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다. 치밀하다.
또한 승진도 하고 좋은 친구들도 사귀며 행복한 시절을 보냄. 7남매도 낳음.
근데 쾨텐에서 바흐더러 궁정악장 시켜줄테니 오라고 함. 궁정악장은 그 당시 음악가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위였음.
바흐의 바람도 있었고, 바이마르 영주와의 마찰도 있었으므로 1717년에 쾨텐의 궁정악장으로 정식 취임함. 바야흐로 바흐의 리즈시절이라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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