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탄생은 현암 김종희 회장에 의해 1952년 10월 9일에 한국화약 주식회사로 설립되면서 부터였다.
이 당시 화약회사로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한국에서 전쟁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화약공판이 있었는데, 조선인에게는 기술도 가르쳐주지 않고 직원 또한 조선인은 매우 적은 숫자를 채용했다. 그 소수의 한국인 중 하나가 초대 회장인 김종희 명예회장이었다.
김종희 명예회장은 일본인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지배인까지 승진, 어께너머로 배운 화약 기술을 통해 화약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고 일제감정기가 끝남에 따라 폭행, 살인에 시달린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조선화약공판의 인천공장을 인수하는데까지 성공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김종희 회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화약산업에 뛰어들어 국내 화약산업의 주체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창업기를 겪으며 꾸준히 성장하였고 1964년에는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하면서 처음으로 화약 이외의 사업분야로 진출했으며, 이후 한국화성공업(지금의 한화케미칼과 한화L&C로 나뉘게 된다.)이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석유화학 산업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그룹이 성장함에 따라 한국화약 무역부서를 전문화할 필요를 느꼈고 태평물산을 설립하면서 무역분야를 전문화하는데 성공했다.
한국화약 그룹은 여기서 멈추지않고 경인에너지를 설립하고 한국플라스틱공업과 한국화성공업을 인수 합병을 감행하였고, 대한민국에서 굴지의 석유화학산업 기업을 보유하게 된다. 또한 동원공업 인수 후 태평개발(지금의 한화호텔&리조트, 시발 존나 비싸기만하다.)을 설립하여 플라자호텔이라는 한화그룹 최초의 호텔을 개관하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계속해서 성장하던 한화그룹에게 큰 사건이 거쳐가게 되는데 바로 1977년 11월 9일 이리역폭발사고다.
인천을 출발하여 광주로 가던 한국화학공업주식회사의 화약열차는 10일 11시 31분에 다른 열차와 함께 이리역에 도착, 1605호 화물열차에 중계되어 목적지인 광주로 출발하기 위해 사고지점인 4번 레일에 머물러 있었다. 화약류 등의 위험물은 역 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곧바로 통과시켜야 하는 원칙이 있었음에도 이리역 측에서 이를 무시했는데 당시 운반을 맡은 호송원 신무일은 이에 대한 항의가 묵살당하자 이리역 앞 식당에서 음주를 한 후 화약열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화물열차 속이 어둡자 논산역에서 구입했다는 양초에 불을 붙여 화약상자에 세워 놓은 뒤 침낭 속에 몸을 묻고 잠에 빠져 들었는데 미쳐 끄지 않은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어 대규모 폭발로 이어지고 말았다.
폭발한 열차에 당시에는 무려 다이너마이트 22톤 폭약 상자 100개(2톤), 뇌관상자 6개(1톤) 폭발물이 총합계 자 30톤분이 실려 있었다.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이리역 구내에는 깊이 15m, 직경 30m의 큰 웅덩이가 패였고 사망자 59명, 중상자 185명, 경상자 1,158명 등으로 총 1,402명에 달하는 인구가 피해를 입었다. 피해 가옥 동수는 전파가 811동, 반파가 780동, 소파가 6,042동, 공공시설물을 포함한 재산피해 총액이 61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이재민 수만도 1,674세대 7,873명이나 되었다.
이런 큰 규모의 폭발사고로 인해 한국화약 그룹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는듯했다. 하지만 현암 김종희 회장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였지만 언론을 통해 빠르게 사과문을 게재하였고 사회에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는 등 기민하게 대처하여 민심을 빠르게 회복하였고 폭발사고가 일어나기전보다 훨씬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된다.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1981년 만 59세라는 젋은 나이로 김종희 회장이 임종을 맞이하게된다. 당시 해외에서 리더쉽 교육을 받고 있었던 장남 김승연은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재빨리 대한민국에 귀국하였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한화그룹 회장이라는 중대한 직책을 맡게된다.
재판받으러 들어가시는 회장님
젊은 나이에 회장이 된 만큼 김승연을 그룹내에서는 지지하는 세력도 없었으며 별로 믿음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은 취임당시 계열사 19개, 총자산 7,458억원, 매출액 1조 1,079억원, 임직원수 11,600명이던 것을 53개 계열사를 보유, 해외 네트워크는 현지 법인과 지사 102개를 구축하고 있는 국내 10대 그룹에 이르렀고, 총자산은 101조 6590억원, 매출액은 35조 950억, 순이익은 1조원에 달하며 임직원수는 31,338명에 달하도록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현재는 그룹내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로 통한다.
이렇게 잘나가던 한화그룹에 마지막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하게 되는데, 그룹내의 반발을 모두 뿌리치고 무보수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1년만에 대한생명을 생명보험업계 2위 자리로 올려놓았고, 인수 당시 2조 3천억에 달하던 적자금액을 2008년 완전 해소 했으며, 2012년 사명 또한 한화생명으로 변화하게 된다. 임원들의 반대에도 끝까지 추진한 결과 한화생명은 자산이 무려 70조에 달하는 거대 보험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김승현 회장은 2007년 글로벌 경영을 선포 하였고, 이후 태양광, 이라크 신도시 사업등을 진두지휘하며 한화그룹의 글로벌화를 이끌었고, 선대회장에게 회사를 물려받을 당시에 비해 자산은 135배, 매출은 32배,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은 각각 163배, 3배 이상으로 키워 한화그룹의 비약적인 도약을 성공적으로 일궈내었다.
앞으로 한화그룹이 더욱더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2014/09/03 - 명품을 말하다 " Ferrari "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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