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갔다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군대에서 별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붙어있으면 산도 옮길수 있다고 하지. 근데 별 5개 본적 있음?? 우리나라에는 최고 높은 사람이 별 4개, 나도 군생활하면서 별 3개짜리 밖에 못봄. 한때 백선엽장군을 명예원수로 추대한다고 왈가 왈부했는데 우리나라 말고도 여러나라에 원수 계급있음. 북괴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이가 원수였다지? 원래 원수라는게 별 5개짜리기는 한데 대장에서 별 하나 더 붙여주는 명예직이나 다름 없음. 전투에서 큰 공로가 있을때 대장 계급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회가 공산주의나 독재자들이 통치하는 나라는 지도자 마음대로 추대함.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아는 맥아더나, 아이젠하워 역시 계급은 원수임. 니미츠도 원수 달았음.
근데 미국의 원수들 중에 별 10개 원수가 한명 존재함.
바로 이 아저씨 헨리 아놀드 원수임. 어떻게 별 10개냐고? 간단해 육군원수 5개 + 공군원수 5개 합쳐서 별 10개임.
이 사람이 어떻게 별 10개를 달았나 이야기 해봄.
1886년 6월 25일 생인 헨리 아놀드 원수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태어남.
원래는 신학대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려고 했으나, 군인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형이 다른 대학으로 가자,
꿩대신 닭이라고 아버지가 강제로 미국 육사-웨스트 포인트-에 입학시킴.
근데 공부 잘했는지 2등으로 입학, 4년동안 잘 배운뒤에 111명중에 66등으로 졸업함.
그리고 1907년에 소위로 임관해서 필리핀으로 향하지.
그리고 그가 복무하던 연대가 필리핀에서 재배치되면서 뉴욕으로 돌아옴.
그렇게 하던 즈음에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고 미국 각지를 돌면서 순회공연했는데,
우연찮게 그 광경을 보게되고, 비행기를 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함.
그리고 중위 달고 원래 가려던 군수성을 때려치고, 비행기부대가 있었던 통신병과로 가게되지.
곧 그는 통신장교로 오하이오주로 가게되었고,
거기에서 라이트 형제가 세운 비행학교에 입학해서 미국에서 29번째 비행면허, 그리고 2번째 군사용 비행면허를 따게되지.
젊은 시절 헨리 아놀드, 머리가 살짝 벗겨졌네.
근데 그 때당시 비행기는 조잡하고, 불안정한데다가 멀리 높이 못남.
비행기의 주요 임무란게 우편배달이나 소식전하는 통신업무였음.
괜히 비행기가 통신병과가 아니었지.
그리고 비행기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서 많이 죽고 했다는데,
헨리 아놀드도 몇번이나 사고를 당해서 죽을번한 고비를 여럿 넘겼다고 하지.
하여간 이때부터 헨리 아놀드는 완전히 비행기쪽에 푹빠져 살기 시작함.
1916년에는 비행학교 교관이 되고 1917년에는 대위 달고 비행기중대를 지휘하기도 하지.
1917년 막바지에 소령을 달고, 미국이 제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자. 그의 비행대도 유럽에 배치된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비행대가 유럽가는 일이 늦게 진행되었고, 결국 1918년 늦은 10월에 겨우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서 영국으로 후송되어 한달 동안 요양하고
1918년 11월 11일 드디어 최전방에 도착해서 전투 투입되길 기다리는데 독일 항복.
결국 실전을 치뤄보지 못함.
1919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헨리 아놀드는 미군을 감축하는 일을 감독하게 돼.
그가 선별해서 무려 8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군복 벗고 사회인이 됨.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심장이 안좋아졌다고 하지.
헨리 아놀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감축시키고 나서 자신도 옷을 벗을뻔 했지만 그냥 군대에 남았고,
1931년까지 소령으로 생활함.
그러다가 폭격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거기에 많은 관여를 하게되고, 계급도 중령이 됨.
근데 1930년대에 미국은 평화로웠던 시절이라 군대가 별로 할일이 없었음.
헨리 아놀드는 자신의 폭격기를 이용해서 주로 봉사활동? 같은거 하게 됨.
1932년 말에 미국 중부에 눈폭풍이 몰아닥쳐서 여러 마을이 고립되었는데, 폭격기를 이용해서 구호물품 전달하기도 하고,
1933년 3월에 일어난 롱비치 대지진 당시에도 폭격기를 동원해서 구호물품을 전달했다고 하지.
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군대체험 캠프를 열어서
3000여명 되는 청소년들에게 비행을 체험시켜주었다고 함.
1935년에 미국에 육군항공대 사령부가 생기면서 헨리 아놀드도 진급해서 거기에 들어감.
그는 주로 새로운 폭격기 개발과 연구에 큰 관심을 보였음.
그의 관여로 B-17이 미공군에 정식 채택됨.
하여간 그의 역할은 주로 미육군 항공대의 질적 양적인 팽창을 도맡아 했음.
즉 일선에 서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가이자, 든든한 빽? 같은 느낌이었지.
1941년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었을때 그는 소장을 달고 육군 항공대를 이끌게 됨.
그리고 그는 앞으로 미래의 전장에서는 공군이 지배할것이라고 생각했고,
의회와 대통령을 설득해서 육군항공대를 크게 팽창시켜, 1939년 3만명밖에 안되던 미육군항공대를 그의 진두 지휘아래 1941년말에는 35만명까지 늘어나게됨. 하여간 이렇게 만들어진 미 육군항공대는 제 2차세계대전때 맹활약을 하지.
독일의 주요 산업시설은 완전히 쑥대밭이 돼버리고, 일본 본토 또한 완전히 석기시대됨.
이렇게 맹활약을 하자 당연히 윗사람들은 미 육군항공대를 만들어낸 헨리 아놀드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키고
1년도 안되서 1943년 5월 13일엔 별 4개를 달아. 원래 별 하나 다는게 힘들고, 그 이후로부터는 별다는게 쉽다지?
그리고 마침내1944년 12월 21일에는 육군에서는 4번째로 원수 계급을 달게됨.
당연히 미 육군항공대의 위상도 높아졌지. 참고로 1번은 조지 마셜, 2번은 맥아더, 3번이 아이젠하워임.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에도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1946년 심장병때문에 제대함.
캘리포니아에다가 땅을 사서 농삿일 하던 헨리 아놀드는 1947년 9월 18일에 미육군항공대가 육군에서 벗어나
미공군이되자, 이미 전역한 헨리 아놀드 원수를 초대 공군 참모총장으로 임명해.
그리고 그것도 성에 안찼는지 1949년 5월 7일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군원수가 되지.
안그래도 육군 원수로 별 5개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공군원수 별 5개가 추가되서
전무후무한 별 10개짜리 장군이 탄생해. 하지만 심장병이 악화되서 비교적 젊은 나이인 1950년 1월 15일에
63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그의 장례식은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국장으로 열렸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힘.
이건 그의 기념비인듯함.
하여간 앞으로는 제 2차세계대전같이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이상 이렇게 별 10개짜리 전쟁 영웅도 안나타날듯 ㅋ
별 5개가 생기는 것도 힘들 듯 싶어. 미국도 제 2차세계대전 이후로는 원수를 잘 안만드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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