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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북괴

8.18 판문점 도끼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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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일어났던 남북한 무력충돌에 이어 전쟁이 일어날 뻔한 사건. '판문점 도끼 만행' 이나 '판문점 도끼 살인사건(북한)', Axe Murder Incident 또는 Tree Cutting Incident(미국)으로 불린다.




당시 UN군 자격으로 판문점에 주둔해 있었던 미군과 한국군은 제3초소 부근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시중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때 북한군 박철 대좌(대령)[2]와 병력들이 나타나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이전 8월 6일날은 아예 나무를 잘라버리려고 했는데, 북한군이 협박을 하자 어쩔 수 없이 중단하고 가지치기만 하기로 한 것.[3]

그래서 당시 한국군은 북한군에게 그냥 가지치기 작업이라고 설명을 하고, 승낙을 받아낸다. 근데 이 북한군이 사사건건 참견을 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또 작업을 중단하라는 말을 한다. 이에 UN군 경비대 장교 아서 보니파스 대위는 북한군을 무시하고 계속 작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박철 대좌가 갑자기 병력을 더 요청하더니 30명이나 되는 병력이 모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보니파스 대위를 때려눕히고, 한국 근로자들이 버리고 달아난 벌목도끼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찍어 죽인 것.[4]

지휘를 해야 할 경비대장이 먼저 죽은데다가 워낙 사건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대기중이던 기동타격대조차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하고 사건이 끝났다. 이 사건으로 여러명이 부상당했고 경비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마크 배럿 중위가 사망했다.[5]


당신의 증거 사진들 








이 사건으로 장교를 둘이나 잃은 UN군은 제대로 빡쳤다. 당시 UN군 사령관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휴가때문에 일본에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자마자 얼마나 급했는지 여객기도 아니고 전투기 뒷좌석에 타고 돌아왔다고 한다. 거기다가 북한군은 뻔뻔하게 '경비장교 회의를 하자' 면서 대충 경비장교 회의 레벨에서 사건을 덮으려는 기색.

장군은 오자마자 바로 회의를 소집했고, 젊은 장교가 둘이나 살해당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보라면서 큰소리를 쳤다. 그 후 바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상의를 하겠으며 데프콘 3를 발동시키겠다라는 말과 함께 회의종료.[6] 물론 북한은 계속 경비장교 회의를 하자면서 덮으려고 했지만 그날 밤 UN군은 최후통보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UN군 사령관의 메시지라면서 군정위 본회의에 당장 나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결국 19일날 경비장교 회의와 군사정전위 본회의를 동시개최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북한군은 위에 써있듯이 자기네측 주장대로 가면서 심지어는 사건 가담 주모자들을 처벌하라는 뻔뻔한 적반하장을 시도했다. 결국 협상 결렬. 스틸웰 장군은 그날 바로 워싱턴 국가안보회의에 데프콘 3 발동 이야기를 했고, 마침내 데프콘 3가 발령되었다.[7] 이에 맞서 북한군도 북풍 1호(준전시체제)를 발동해서 전군무장을 지시.

양군이 대치하는 가운데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8])' 플랜이 세워졌다. 요약하면 지원병력 감시 하에 미루나무를 자른다로 축약할 수 있는 작전이다. 이후 1976년 8월 21일, 마침내 미국과 주변의 주둔 미군 기지에서 병력을 편성했는데 그 규모가 다음과 같다.

  •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 20대가 아이다호주 보이시에서 대구비행장으로 전진배치.
  • 에서 B-52 3대 발진. 군산비행장 주둔 미 공군의 F-4와 한국 공군의 F-5가 엄호하였다.
  • 오키나와에서 F-4 24대가 발진.
  •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 해군 제7함대미드웨이급 항공모함과 순양함 5척이 서해안에 대기중[9]
  • 12,000명 증파요청. 그 중에는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해병대 1,800명도 포함되어 있다.
  • 미 육군 정예병력으로 813명 규모의 태스크포스 비에라(Task Force Viera)를 편성. 

엄밀히 북한을 100% 갈아서 없애는 것보다는 휴전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서해안 부분을 정리할 생각도 했다는데, 지금도 가끔 나오는 연백평야로의 진격을 충분히 고려할 가능성을 두고 작전에 임했다. 
그리고 이 작전에서 데프콘 3가 데프콘 2로 레벨업했다. 준전시체제 돌입. 북한이 도발만 하면 바로 발포해서 북한을 영원히 없애버릴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일단 미군의 계획은 '작전시 교전사태가 발생하면 포병대는 개성의 인민군 막사에 포격을 개시, 개성 위쪽 시변까지 포격해서 포병대를 없애버린다' 였으며 북한 전차부대 남하 같은 구체적인 전시상황 계획까지 완벽하게 수립했다.

이에 한국군도 질 수 없어서 박정희 대통령 직접지시로 김종헌 소령이 특공대장으로 임명되었고, 북한군 도발 유도를 위해[10] 초소 4곳을 파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때 박정희가 한 말이 그 유명한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카투사로 위장한 특전사 요원들은 진짜로 공동경비구역 내 북한군 초소 4곳을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AH-1 공격헬기 7대와 다목적 헬기 20대의 직접 엄호하에 한미 양국이 미루나무를 자르는 데 성공하면서 일단 폴 버니언 작전은 종결.





북한의 반응




쫄았다. 한마디로 일축이 가능하다. 진짜로 저 정도 병력을 보내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실제로 작전 내내 단 한번도, 한국군이 경비초소를 파괴할 때도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북한은 소련중국이라는 원군이 있긴 했지만 소련이나 중공 역시 노발대발하는 미군과 정면충돌하기 싫었는지 "북한 니들이 잘못했으니까 사과나 해라." 라면서 방관하는 태도를 취해 북한을 더욱 쫄게 만들었다.[11]

이후 북한은 긴급하게 수석대표회의를 요청했고, 김일성이 직접 유감성명을 표했다. 처음 미국은 '유감성명은 잘못 인정이 아니다' 라면서 거부했다가 하루 지나서 결국 수락. 그리고 북한은 미국이 또 올까봐 1년동안이나 준전시체제를 유지했고 미군은 일단 폴 버니언 작전 병력들을 철수시켰지만 이후 남북한의 군사력 증강 대결이 일어났다.





요약      
 

1. 천조가 가지치기 하는데 북괴가 도발함

2. 천조가 지대로 빡침

3. 박통도 빡쳐서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 이라고 하고 군화하고 철모 가지고 오라고함

4. 천조하고 박통이 북괴 가루만들 작정으로 도발함

5. 북괴 쫄음( 중국하고 소련도 천조빡돈거 보고 안건듬 ㄷㄷ)




P.S  도끼 만행 사건을 총지휘한 북한군 장교의 신상을 미군이 파악하여 아직까지 관리중이라고 함. 

몇 해전 보도된 미군보고서엔 그 장교가 영관급이 되어서 함경남도 **부대에서 근무 중이라고 명시되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