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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변천사. 1954년. 원래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장소는 저기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음. 지금은 북괴군이 평화박물관이라 이름붙이고 북괴로 오는 관광객들 브리핑 하는 장소임.공동경비구역은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 이 때만해도 휴전상태가 반세기를 넘을 것이라 생각 못했겠지... 968년. 아직 부대 명칭이 USASG(미육군 지원단) 시절. 1952년에 정전협정 지원을 위해 편성된 부대가 그 시초임. Joint Security Force는 경비중대 명칭인데, 80년대까지 한미 연합 편성이라 그렇게 이름 지어지듯. 찦차에 헌병 병과 마크 있는데 나중에 보병부대로 바뀐다.부대명칭은 UNCSG(유엔사지원단)으로 바뀌었다가 또 70년대 후반에 유엔사경비대(UNCSF)로 바뀌었다가 90년.. 더보기
이순신 장군 스페셜 4부 (전설로 지다) 명량 해전에서 일본군을 막아내고, 다시 조선의 수군들을 수습한 뒤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의 수군과 함께 철수하는 일본군을 추격하지. 이때 명나라의 제독이었던 진린은 무능하고 탐욕스런 인물이었으나 이순신 장군은 처음에는 명 해군의 행패를 핑계로 본진에서 백성들과 함께 떠나려는 척을 하여 그에게서 명 해군의 지휘권까지 넘겨 받았고, 이후 진린에게 자신이 세운 공로를 전부 넘겨주는 식의 '채찍과 당근'을 병용하여 그를 마음으로 감복하게 하였지. 이 때문에, 진린은 충무공에 대하여 이야(李爺) 혹은 노야(老爺)라는 경칭으로 불렀다고 해. 아무튼 진린의 협조까지 얻은 이순신은 마지막 결전을 위해 노량 앞바다로 향하지. 1598년 소수의 병력을 순천 왜교성 앞으로 보내 조선 수군이 그 쪽을 공격하는 걸로 위장했어. .. 더보기
이순신 장군 스페셜 3부 (백의종군 그리고 명량해전) 한산도 대첩 승리 이후, 이순신의 조선군은 7월 10일 안골포에서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 등이 지휘하는 왜선 42척을 추가로 격파하고 왜군 250명을 바닷속에 수장시키고 돌아오지. 조선군 전사자 19명.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지금까지의 전투 중 가장 피해가 컸던 혈전(?) 이었다고 해. 안골포 해전 뒤에도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소규모로 함대를 분산시켜 남해안 청소에 나서지. 2~10척 정도를 1조로 해서 사방에 전선을 뿌린 다음, 왜선이 조금이라도 포착되면 무차별 공격으로 수장시켰어. 약 6번의 소규모 전투가 있었는데 모두 결과를 묶어서 적어보자면 (장림포, 화준 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초량목 해전 결과) 조선군 피해 : 0척, 전사자, 부상자 없음 일본군 피해 : 34척 침몰, 전사자.. 더보기
이순신 장군 스페셜 2부 (한산도 대첩) 용인 전투에서 조선군에게 승리를 거둔 일본군은 점차 사기가 오르고 마침내 이에 고무되어 이순신을 밀어내고 해상 루트를 다시 장악하려는 망상에 사로잡히지 사기 오르면~ 싸우면 되고~ 싸우다 지면~ 자살하면 되고~ ".............." 아무튼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대장으로 한 일본 수군 73척. 1만명이 가덕도로 접근해 육군과 연계를 시작해.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던 이순신 장군은 다시 출격을 명령하지. "쪽발이 사냥 ㄱㄱ" 그리고 마침내 이순신 장군이 정한 전투지는 바로 이 한산도가 참 교묘한 지형인 것이 수비하는 조선군 입장에서는 위급 상황시 뒤로 빠져나가기 쉽고 일본군이 상륙한다 하더라도 민가가 없어 굶어죽기 딱 좋은 지형이야. 이 바다에 있는 호랑이 아가리로 일본군을 유인한 이순신 장군.. 더보기
이순신 장군 스페셜 1부 (임진년 전설의 시작) 충무공 이순신 忠武公 李舜臣 1545.3.8(음력)~1598.11.19(음력) 유명수군도독 조선국 증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 영의정 덕풍부원군,행 정헌대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석 자 칼로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다(三尺誓天 山河動色, 삼척서천 산하동색)"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다"(一揮掃蕩 血染山河, 일휘소탕 혈염산하)" 게임 대항해시대 이순신 이순신 장군의 어린 시절~청년기 이야기는 생략할게.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에서도 다룬 부분이고. 또 이 게시글은 이순신 장군의 전투에 대한 글이 될 거라는 걸 미리 말해둘게. (파워 압축 스토리) 우선 32살에 무과에 늦깍이로 급제한 이순신은 북방의 여진족들을 조금 상대하다가 불알친구인 류성룡의 천거로.. 더보기
해적 이야기 - 왜구 편 짤은 황산 전투화 왜구 란? 말 그대로 왜. 즉 일본의 해적들을 말해. 동북아 역사상 가장 최악의 바다 쓰레기들로, 중국, 한반도의 국가들이 바다를 한 번이라도 마음놓고 다닐 수 없게 만든 족속들이야. 주로 이키 섬, 쓰시마 섬, 세토 내해 등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했지. 왜구들의 활동 영역도 왜구의 역사는 존나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신라 박혁거세가 죽고 남해 차차웅이 왕위에 오른 시절부터 벌써 왜구가 쳐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어. 전형적인 고대 왜구의 모습. 훈도시 + 일본도의 간략한 조합으로 야만성 + 50 신라의 문무왕이 죽어서 동해 용왕이 되겠다고 한 것도 전부 이 왜구들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였지. 문무왕릉. 고대의 왜구들은 여전히 야만적이고 허술한 지휘 체계, 그리고 일발적인 약탈에 그치.. 더보기
유명한 해적 모음 - 중국,한국 편 짤은 오늘날의 어류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짱개 어선(해적) 새끼들 > 보스 - 손은(? - 402) 후계자 - 노순(? - 411) 서도복(? - 411) 짤은 윤발 성님 위에 소개한 손은, 노순, 서도복 이들은 중국의 동진 시대에 활동했던 해적이자 농민 봉기군이야. 특히 손은은 오두미교를 믿고 있던, 상당히 농민들 사이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지. 오두미교 봉기를 시도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교주가 죽자, 손은은 노순과 서도복과 함께 신도들을 이끌고 해도라는 섬을 도망쳐. 그리고 그곳에 오두미교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세력을 키운 다음, 해적으로 성장하지. 이들의 힘은 점점 강해져서 마침내 399년. 해도를 벗어나 해적들을 이끌고 중국 본토에 상륙해서 약탈과 학살을 시작하지. 삼국지에서 들어본 도시 성을.. 더보기